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가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서점에서 종교개혁과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박흥식(53)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중견 사학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양중세사를 가르치고 있다. ‘상인길드’ 연구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중세도시, 중세의 일상생활, 중세 말의 위기, 흑사병 등을 키워드로 한 논문을 썼다.
최근에는 종교개혁기 교회와 사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최근 홍성사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는 주제의 저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루터와 종교개혁은 21세기 한국교회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며 “지금까지 교회가 걸어온 길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10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묘원 인근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집사다. 그에게 왜 한국교회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를 물었다.
-지난달 31일이 종교개혁기념일이고, 2017년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습니다.
“올여름 두 차례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곳곳에 종교개혁의 뜻을 되새기려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터가 상품이 돼 변질된 느낌입니다. 국내에선 서울 강남의 한 도로 이름을 ‘칼빈로’로 개명하는 것을 추진했습니다. 또 기념메달을 발행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아마 종교개혁자 본인들도 원하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의미 있는 기념일이 다가오지만 지지받을 수 없는 엉뚱한 일에 힘을 소모하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루터 관련 행사에 비판적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그런 행사에 공감이 안 됩니다. 그동안 기독교에 등 돌렸던 사람들에게 교회가 새로워지려고 한다는 기대감이라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슨 내용인가요.
“도서출판 홍성사에서 아이디어를 구해 제안을 했는데 프로젝트가 성사됐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써 보려는 시도입니다. 제 의도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분리시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씨줄과 날줄처럼 하나로 엮어 기독교를 주제로 한 통합적인 세계사를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서양인의 시선이 아닌 우리 시선으로 기독교 발전을 성찰하고 서술해보자는 것인데, 이런 의도에 동의하는 교회사가와 세속사가들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의미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나요.
“아니요. 한국교회는 루터의 개혁 구상과 성과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가 개입하거나 촉발시킨 농민전쟁, 유대인 문제, 교회분열 과정 등은 깊이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을 제한적으로 보려는 태도로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길을 잃었다고 했는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기도하는 박 교수. 강민석 선임기자
“혹자는 대형교회나 목회자가 문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문제라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차지하는 역할 때문에 목회자가 우선 부각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목회자 교육과 양성, 신학대 문제 등에 대해 그동안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고칠 생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 종교개혁 500주년을 어떻게 맞는 게 바람직할까요.
“떠들썩한 행사보다 루터의 글을 오늘 우리 시대의 맥락에서 차분하게 다시 읽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의 개혁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보완하고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개교회 중심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교회 내부부터 환골탈태하는 대변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루터가 한국교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루터도 약점이나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혁신앙이 지녀야 할 본질 혹은 정신을 일깨운 개혁자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루터가 성서와 믿음, 은혜의 의미를 바로 정립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가 교회개혁을 위해 강조한 ‘만인사제직’은 왜 빼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인사제직’을 강조하시는데요.
“루터는 교황청 혹은 성직자집단 스스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일종의 개혁 청사진을 밝혔는데, 만인사제직은 이런 맥락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하는 중세적 교권주의를 부정하고, 세례 받은 모든 신자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나 목사가 되고 설교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성직자가 아닌 신자들이 교회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한국교회나 사회에 접목될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배후에 담임목사가 지나치게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하고 마치 중세교황처럼 군림하는 문화가 문제입니다. 평신도 중에 헌신적이고 역량이 있는 분이 교회 안에 많지만 교회는 그런 분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교회의 일에서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목회자들이 교인과 소통하기보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세 교권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이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한 시민이 되는 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좁은 의미의 종교 영역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이미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가 아닐까요. 교회가 존속이나 부흥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그 교회는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루터의 개혁에 대해 후한 평을 내리지 않는 것은 그가 농민의 고통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농민에 해당하는 사람은 오늘날 누구일까요. ‘사회적 약자’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가 여전히 ‘법과 질서’만을 강조하는 데 머물러야 할지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글=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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