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 2010 대회를 참석하고 | |||||||||||||||||||||||||||||
이번 대회는 많은 면에서 1910년 에딘버러 대회와 같은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당시의 대회는 북미와 서유럽 위주의 선교 단체들의 대표들이 참석한 것이라면 이번대회는 세계 각 대륙 특히 60개국의 300명만 초청된 점이다. 1910년 대회를 주도한 주요 인사는 밸포어(Balfore), 존 모트(John Mott), 존 올드햄(John Oldham)이다. 우리에게 밸포어 선언으로 잘 알려진 밸포어 경은 전 유니온 당(Unionist Party) 의 각료를 역임했으며, 스코틀랜드 교회 (Church of Scotland) 출신으로 이 대회의 대표(President)를 맡았다. 무디(D L moody)와 함께 세계선교 자원 운동을 이끌었던 John Mott 는 세계기독교선교연맹(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의 대표 자격으로 그리고 감리교 평신도로 이 대회를 실제로 끌었던 인물이다. 여기에 영국 기독학생운동(British Student Christian Movement)을 주도하였던 조셉 올드햄(Joshep Oldham) 도 밸포어와 존 모트와 함께 이 대회를 실제로 인도하였다. 2010년 대회는 1910년 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1910년 대회 “우리 시대에 복음화를 완성하자(Evangelization in this generation)”는 모토 아래 “지구촌 선교를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자”는 취지라면 이번 2010년 대회 “교회연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성격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1910년 대회에는 천주교회와 정교회는 초청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대회는 고루게 초청되었다. 이번 2010년 대회의 삼각축을 이루는 것도 선교 단체가 아니라 스코트랜드 교회 (Church of Scotland) 와 에딘버러 대학(University of Edinburgh) 와 나머지 각 기독교계의 대표자들이 균등하게 참여한 점이다. 복음주의 진영(WEA), 세계교회 협의회(WCC), 로잔대회(Lausanne Congress) 의 대표자들이 이례적으로 모두 다 자리를 함께 하였고, 개신교 대표자들 외에도 천주교, 정교회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여기에 오순절 계통도 20여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General Council 에는 마원석 목사님의 사모님인 Julie Ma 박사님도 집행 위원의 한명으로 참가하여 전 대회를 이끌어 가게 되어 100년 전과 다르게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된 한국 교회와 아시아 교회의 대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 대회가 개최되기 전, 8개 분과 (8 Assigned Commissions)를 만들과 각 분과에는 20명의 위원들이 위촉되어 각 주제에 따른 연구(research)를 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2년에 걸쳐 진행하였다. 각 분과는 각 주제에 따른 책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하여 각 대표들에게 대회가 열리기 전에 배포하여 이미 그들이 에딘버러에 도착하기 전에 주제에 대한 내용을 이미 숙지하도록 했으며, 에딘버러 참석 기간에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당시 1910년 대회 당시 다루었던 8개 분과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비기독교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 (Carrying the Gospel to all the Non-Christian World , June 15, 1910) 2. 선교지의 교회 (The Church in the Mission Field, June 16, 1910) 3. 각나라 사람의 기독교화에 관련된 교육(Education in Relation to the Christianization of National Life, Jun 17, 1910) 4. 비기독교 세계에 관련된 선교 메세지(Missionary Message in Relation to the Non-Christian World, June 18, 1910) 5. 선교사의 준비 (The Preparation of Missionaries, June 22, 1910) 6. 선교의 모국 본부 사역(The Home Base of Missions, June 23, 1910) 7. 선교와 행정 (Missions and Governments, June 20, 1910) 8. 협력과 일치 도모(Co-Operation and the Promotion of Unity, June 21, 1910) 상기 8개의 주제는 각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이와 다른 9번째 책도 출간되었다. 이는 1910 에딘버러 대회 기간 동안 진행된 것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책에는 주요 강사들의 강연과 진행 사항을 담아 선교 대회 이후에 출간한 것이다. 당시 1910 에딘버러 대회 정신은 기독교 선교 공동체가 모두 “우리 시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는 취지를 위해 서로 협력 질주하자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선교에 대한 책임과 긴박성에 대한 촉구는 각 분과의 보고서와 토론 그리고 대회 기간 중 발표된 강연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 대회 기간동안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예배의 예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개신교 선교사들의 일치를 요청하는 초청은 1910년 대회 전반에 흘렀던 강의와 기도 그리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소원으로 스며들어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2010년의 대회는 많은 부분에서 1910년 대회를 모방하거나 또는 그 궤를 같이하려고 한 노력이 매우 많이 보였으나 내용면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1. 선교의 열정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를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복음화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선교의 열정으로 똘똘 뭉쳐 복음화가 이루어진 지역의 모든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지구촌 복음화를 위해 일치와 협력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미 너무나 놀라운 해외 선교의 역사를 이룩하였던 무디의 “해외 자원 선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은 무디 혼자의 힘이 아닌 Adoniram J Gordon, Arthur Pierson, Ruben Torrey, Robert Speer, Luther Wishard, Charles Studd 와 John Mott 의 연합 사역을 통해 이룩했다는 점이다. 특히 A T Pierson 과 R A Torrey 를 통해 주창된 “우리 시대에 복음화를 이루자(Evangelization in this Generation)” 는 외침은 “무디 군단”에게는 아주 낮익은 구호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열정이 밸포어경과 올드햄등 영국 측 지도자들과 합쳐져서 개최 된 것이 바로 에딘버러 1910 년 대회의 “선교를 통한 복음화”의 열정이었다. 2010년 대회에는 이러한 불타오르는 선교의 열정이나 또는 선교의 불을 붙이는 열정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1910년 대회에는 볼 수 없었던 천주교회와 정교회 대표들 그리고 개신교 진영의 각계 각층이 고루게 망라되었기에 오직 복음화를 위한 선교의 열정을 위한 대회로 이끌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타올랐던 19세기 선교가 마무리되는 20세기 초기인 1910년은 여전히 서구권 주도의 대회였다면, 이번 대회의 대표자들은 쇠퇴하는 서구권 기독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다. 주최의 장소가 되고 또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에딘버러 대학 신학부도 영국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종교학부로 가고 있으며, 스코트랜드 교회 역시 심각한 쇠퇴로 말미암아 해외 선교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외에서 들어 올 선교의 도움이 절실한 선교지가 된 것이다. 만약 외부 도움이 없다면 과연 서구 교회가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 가운데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910년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자유주의 복음주의 진영의 양분이 1910년 에딘버러 대회 이후에는 급속이 진행되어 에큐메니칼 (Ecumenical) 진영과 복음주의(Evangelical) 진영으로 나뉘어 졌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진행된 두 진영이 이번 대회에서는 “한시적 오월동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2010년 대회의 전반적인 진행에서는 1910년의 선교의 열정에 모든 초첨을 맞추기보다는 연합과 일치를 촉구하는 모습으로 “선교의 헌신과 다짐’을 촉구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2. 연합과 일치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는 유달리도 “연합과 일치”가 강조되었다. 1910년의 “Co-operation and Unity” 는 일종의 교회와 선교 단체들의 “협력과 일치”를 촉구하는 것이라면 2010년 의 “일치(Unity)” 는 “개신교, 정교회, 그리고 천주교회의 일치”를 촉구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는 3번에 걸쳐 진행된 Plenary Session 에 개신교에서는 WCC, WEA, 오순절 운동을 균등하게 각 10분에서 20분씩 할애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정교회나 천주교회에게도 그 기회가 균등하게 배분되엇다. 분과 토의도 1910년 대회와 마찬가지로 진행된 9개의 의제 가운데 모든 대표들이 균등하게 배치된 점이다. 9개의 의제를 동일하게 하루에 두번씩 3개의 Track 으로 나누고 각 대표들의 토론이 가능하도록 Roundtable Discussion 을 하도록 한 점이다. 3일 동안 매일 두번씩 진행되는 토론 가운데 정교회 주교, 천주교 주교, 에큐메니칼 대표, 복음주의 대표 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오순절 대표가 60개국에서 왔기에 토론의 Point 를 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토론의 의제로 주어진 질문조차 너무나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참석자 가운데는 질문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론 참석자 중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그것을 설명하느라 제한된 시간마저 잠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분들을 위해 함께 동석한 분들이 각 나라 말라 옆에서 통역할 때에는 대화 자체를 진행하기 매우 부담스러운 경우도 가끔 있었다. 1910년에는 유럽과 북미주에는 백인 위주의 영어권 대회였다면 2010년 대회는 다중 언어, 다중 문화, 다중 국적의 대표들이 모이는 다중 언어 대회였다. 거기에 각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과 일치를 시도하였기 뜻깊은 의미도 일부 있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진행의 어려움도 있었다. 성례전이나 구원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공동체(정교회나 천주교회) 대표들과 함께 “교회 일치(Ecumenism)’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가장 의미있었던 일은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지도자들과 식사 때마다 그리고 Break Time 에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깊은 신학적 종교적 차이를 그대로 두고 대화와 토론을 진행해 나가는 점에 느끼는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주장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 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과연 각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지도자다운 성숙과 지도력을 겸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3. 경배와 찬양 2010년 에딘버러 대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예배일 것이다. 영국 교회의 예배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금새 2010년 예배의 전단지를 본다면 그 성격을 눈치 챌 것이라 생각된다. 치밀하게 준비된 각 나라의 언어로 (특히 한국의 경우 “아리랑” 노래의 경우와 같이) 만든 Common Prayer 책자를 통해 예배를 드린 점이다. 영국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Prayer Book 이다. 영국 역사는 Prayer Book 하나 만드는 문제로 전쟁을 치룰만큼 이 부분은 중요한 역사적 관심사이다. 그런데 영국의 Prayer Book 을 연상케 하는 Common Prayer 를 만들어 매일 매일 배포하고 예배를 인도한 것은 참으로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Common Prayer 를 만들어 배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단 하루만 진행했다면 매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주최측은 매일 매일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는 Common Prayer 를 만들어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였고 참여할 때마다 “언제 끝나려나?’하는 지루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주강사 중 한 분이 되시는 보스톤 모 대학의 교수와 식사 중 대화를 나누는 중 그 교수도 같은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그분의 애기를 들으며 “나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하였다. 1910년 대회는 “어떻게 하면 선교에 도전을 주고, 선교의 열정을 나눌까?” 하는 점이 초점이었기에 무디가 SVM 에서 하던 방식을 많이 답습하였다. 즉 “선교에 관련된 찬송가를 선곡하여 그것을 반복하여 부른 것”이 1910년 대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에딘버러 대회는 각 나라의 언어로 불렀고(이 부분이 매우 좋은 부분이 되기도 함) 그러한 찬양곡조차 정교회, 천주교 그리고 주로 18세기와 19세기의 오래 된 찬송가를 사용한 성공회와 개신교 곡을 고루게 선택한 점이다. 언제나 경배와 찬양에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고 그 기름 부으심에는 각 사람을 헌신케 하여 선교의 역사를 이루게 하는 놀라운 결단이 있다. 하지만 2010 년 대회에 불려지 찬송가 속에 각 사람 마음속에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는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기 보다는 마치 시계 바늘이 수백년전으로 돌아 간 것만 같은 것으로 찬송을 불렀다. 물론 그 찬송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본다. 어떤 부분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는 도전”을 주는 찬송이 없었음이 아쉬울 뿐이다. 4. 9개 주제 토론 1910년 대회에는 8개의 주제를 미리 각 분과 위원 20여명이 연구하고 미리 책자로 만들어 배포함으로 대회에 참석하기 전 충분히 숙지하고 또한 이해하도록 배려하였다. 2010년 대회도 각 주제별로 한국, 보스톤 미국, 인도 등 여러 곳에서 9개의 분과 토의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작년에 참석했던 에즈베리 신학교의 “Revitalization Project” 도 이번에 발표된 것이 그 실례이다. 먼저 이 프로잭트는 일차 연구 심포지엄을 에즈베리 신학교에 개최하고 이번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2차 심포지엄을 열어 마지막 각 분과 토의에서 토론의 주제의 일부분으로 발표되어 토론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각 여러 분과에서 그 주제에 맞는 심도 깊은 연구와 토론들이 진행되었고 그러한 부분들이 종합적으로 추출되어 이번 대회에 여러 Track 에서 발표되었다. 발표된 각 주제별로 참석자들과 함께 연구 토론하였고, 토론된 내용은 앞으로 정리되어 책자로 발간될 예정이다. 이번 각 분과에서 매일 두 개의 의제로 3일간 나누어 진행된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선교의 기초 (Foundation for Mission) 2. 다른 종교 가운데 있는 기독교 선교 (Christian mission among other faiths) 3. 선교와 후기근대성(Mission and Postmodernities) 4. 선교와 능력(Mission and Power) 5. 선교사 관련 형태 (Forms of Missionary Engagement) 6. 신학 교육과 형태(Theological Education and Formation) 7. 현시대 상황에 맞는 기독교 공동체들 (Christian Communities in Contemporary Contexts) 8. 선교와 일치 – 교회론과 선교 (Mission and Unity – Ecclesiology and Mission) 9. 선교 영성과 권위있는 제자훈련(Mission Spirituality and Authentic Discipleship) 상기의 9개 주제 가운데1910년 에딘버러 대회와 2010년 기간 중에는 다룬 부분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도에 새롭게 다룬 주제(1910년 주제에 없는 것)는 다음과 같다.
1. 선교와 후기근대성2. 선교와 능력 3. 현시대 상황에 맞는 기독교 공동체들 4. 선교 영성과 권위있는 제자훈련 위와 같은 9개의 주제 위에 소주제로 각 나라나 또는 각 지역에서 분과 토의를 걸쳐 진행된 내용을 참석자들에게 주어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는 각 참석자들의 종교적 배경이 너무나 다르고 또한 신학적 인종적 배경도 다르나 각 분과 토의에 대한 질의응답의 결과물들을 문서화하고 앞으로 그러한 토론 내용을 책자로 발간하는 시도는 참으로 많은 희생과 수고가 요구됨을 본다. 전체의 흐름이 복음주의 진영을 대변하였던 1910년의 모습과는 판이하기에 2010년 대회 전체의 흐름은 여전히 교회일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예측해 본다. 5. 대회의 진행 1910년 에딘버러 대회가 당시의 대부분의 기독교 선교 지도자들의 만남의 장소였다면 2010년 대회는 지금 현존하는 각 기독교 진영 지도자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평소에 만나 보기 어려운 지도자들이 다 모였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우선 Lausanne 대회 대회장이 Douglas Birdsall 이나Atlas of Global Christianity 의 저자인 Todd M Johnson, 예일대의 Bonk 박사와 각 대륙의 매우 중요한 저자와 학자 그리고 지도자들은 총망라된 느낌이다. 내 생애에 있어서 이렇게 쉽게 각 대륙의 주요 지도자들과 마치 이웃사촌처럼 5박 6일 동안 식사하며 차마시면 교제한 기회는 많지 않은것 같다. 그러기에 대회에 쏟아져 나오는 메세지보다는 Break Time 과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 갖게된 교제가 훨씬 더 많은 소득이 있었음을 본다. 언뜻 보면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대화를 통해 모두 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회 전체는 무리없이 부드럽게 진행되었고 에딘버러 대학과 스코틀랜드 교회 그리고 준비 위원회의 지도자들의 헌신적이 수고와 섬김이 있었다. 천주교외,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각 종파들이 다 모였기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을 줄이기에는 무리가 있었음을 보았다. 6. 지역 교회 탐방과 스코틀랜드 교회 대회가 끝나는 날이 주일이었기에 각 참석자들은 미리 신청한 교회에 따라 각 교회로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물론 장로교회의 모태가 되는 St. Giles 교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에게 배정된 교회는 Kirk O’Field 교회였다. 아프리카 선교사로도 있었고 에딘버러 대학에서 선교학으로 PhD 받은Ian Maxwell 목사님이 시무하는 Kirk O’Field 교회는 놀랍게도 가장 선교를 왕성하게 했던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그 교회로부터 15개의 교회가 생겼고 이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5개 교회가 다시 합쳐서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교회에 함께 하게 된 만나게 된 중국 지도자 목사는 난징에서 연합 신학교(Nanjin Union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있는 文革(Wen Ge) 목사인데 그는 요령성 출신으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보다 먼저 조선 선교를 감당했던 스코틀랜드 John Ross 목사와 동역했던 가문이라고 한다. 조선선교를 위해 순교했던 토마스 선교사를 후원했던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나 1910년 대회를 참석했던 윤치호 선생은 모교인 개성 송도학교를 설립하기도 한 분이라 이 교회의 말씀 가운데 스코틀랜드 교회에 대한 감사의 말씀과 그리고 에딘버러 1910년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강단에서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 그지 없다. 7. 국회의사당 방문 2010년 대회 중 둘째날 저녁에는 참석자 전원이 스코틀랜드 의회를 방문하였다. 1910년에는 스코틀랜드 의회 자체가 없었지만 그 이후 형성된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직접 하원의장의 인도 하에 스코틀랜드 역사와 의회의 환영 인사를 듣고 또한 참석자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8. 지구촌의 선교 기류 이번 대회 기간 동안 의외의 축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세계에서 온 주요 지도자들과의 교제와 몰락하는 서구 교회의 진면목과 발흥하는 제삼세계 지도자들과의 좋은 만남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대회에 주는 주요 메세지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의 시대를 볼 때 과연 세계 교회가 어디로 가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를 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이 많이 들었다. 늘 강의하고 집회하고 또한 기도하던 것과는 판이한 2010년 에딘버러 백주년은 말 그대로 백년만에 처음 다시 모인 것이지만 이 모든 대회의 흐름 가운데 세계 교회가 종말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천주교 주교단의 성숙한 모습이나 대회중에 전해 준 교회의 메세지나 정교회 Petros 주교와의 따뜻한 교제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 성도들이 주지하고 있던 아니면 주지하고 있지 못하던 전세계 교회를 하나로 묶으려는 실제적인 시도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확인한 점이다. 늘 그렇게 말씀으로 읽고 또 경계를 해 왔던 “배교”라고 하는 종말의 사건이 실제 가능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이번 대회에 참석한 지도자들이 다 “배교”의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은 분명 아니다. 참석했던 많은 지도자들은 여전히 복음과 선교에 특심이 경건한 복음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한 지도자들 가운데 몰락하고 있는 서구 기독교회가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연합과 일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대회가 백년만에 처음 다시 열리는 것이기에 만약 또 다른 백년이 오지 않는 한 이번 대회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오직 정리된 책자를 통해서만 대회의 결과를 알리고 살피게 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교회일치(Ecumenism)”라는 이름하에 가능하게 될 수 있는 종교다원주의와 연합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오신 수녀이자 교수인 한 분은 주제 강연을 하기도 하신 분이며 이번 대회에 자주 모습을 들어 내는 중요한 분 중의 한분이셨는데 식사를 함께 네명 가운데 너무나 기독교를 특히 초대 교회를 폭력적 교회로 묘사하고 이는 이슬람 보다도 더 폭력적인 초대 교회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음을 보고 내심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파란 눈에 곱게 연세가 드신 연약한 여성이 이슬람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그렇게 똑같이 주장하는 것을 보고 Interreligious Dialogue 나 또는 Interfaith Dialogue 라는 미명하게 기독교 신앙 자체를 무장해제 시키는 논리의 싸움이 깊숙이 기독교 안방까지 들어 왔음을 보게 되었다. 이런 대회에서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땅끝 선교” 나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이슬람 선교”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전세계 교회가 만약 이러한 Ecumenism 의 정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나아 간다면 깨끗하며 성결하게 오직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거룩한 교회들이 그 영향권 안에 원하든 원치 않든 들어 가게 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집트의 중요한 지도자 중 한명이 안드레아 (Andrea Zaki Stephanous) 목사는 소수로 있는 중동의 교회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선교의 한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메세지 가운데 소수로 전락하게 된 기독교회의 비참함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앞으로 전세계 교회의 모습이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눈 앞에 닥치게 될 때 비록 소수로 남더라고 성결하며 거룩한 기름 부으심 안에 거하는 교회는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영혼의 탄식을 주님께 올리는 기도로 드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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