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박사

김수지 전 서울사이버대 총장 별세

국민일보 DB

국내 ‘간호학 박사 1호’ 김수지(남서울은혜교회) 전 서울사이버대 총장이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74세. 김 전 총장은 급성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장례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11호)이며 발인예배는 28일 오전 10시다. 시신은 기증 예정이어서 별도의 장지는 없다.
 김 전 총장은 1979년 호스피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다. 2001년 ‘사람 돌봄 이론’으로 간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 4년 동안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간호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심리적 약자를 지원하는 ‘좋은의자’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김 전 총장은 평생 간호사로 살았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간호사가 된 것은 48년 여순사건에서 총살형으로 끌려갔다 극적으로 살아난 남성을 돌봐줬던 간호사 아주머니에게 감명을 받고서다. 그는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입학해 68년부터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출강했으며 78년 미국으로 유학, 보스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스피스를 소개한 것은 한 여성 암환자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왔던 일이 계기가 됐다. 고(故) 전산초 연세대 간호대 학장의 독려 아래 호스피스 워크숍을 구상하면서 본격 도입했다. 당시엔 호스피스란 말 자체도 없던 시절이었다.
 김 전 총장은 호스피스센터와 요양원, 정신사회재활센터를 건립해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늙어가겠다는 꿈을 꿨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2004년부터 서울사이버대 학생으로 변신, 62세의 나이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2006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해 서울사이버대 총장으로 취임했고 2009년엔 꿈에 그리던 노인공동생활 시설인 요양센터를 개원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69세 때인 2011년엔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로 선교활동을 떠나 릴롱궤 대양간호대 교장으로 일하며 간호 교육 및 행정, 지역 봉사 등에 힘썼다.
 김 전 총장은 평생 성숙한 신앙의 길을 추구했다. 숙명여고 시절 호주 선교사에게 배운 ‘4F’가 그 원동력이었다. First priority(하루의 삶에서 최우선적으로), Faith in God’s Word(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Follow the Word(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라), Fruitful life(열매 맺는 삶)이다. 그에게 성공적 삶이란 예수님처럼 돌보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화여대 간호대학장, 대한간호학회장, 대한YWCA 연합회 부회장, 한국정신보건전문간호사회장, 한국호스피스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별세한 고(故) 김인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남편이다(02-2227-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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