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현재인 땅끝으로

젊은 제인(Jane)은 1947년 어느 날 젊은 아처(Archer)의 초상화를 그렸다. 한참을 그리던 제인이 갑자기 붓을 놓았다. “더 이상 못 그리겠어요.” 그리고는 한마디 했다. “아처, 사랑해요.” 

이들은 1948년 8월28일에 결혼했다. 아처는 프린스턴신학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한 전도양양한 청년이었으며 제인은 샬럿시 퀸즈 칼리지의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의 미술학도였다. 그들은 젊었다. 젊은 날, 열정과 꿈이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제인이 아처에게 사랑을 고백한 지 18년 후인 1965년 이들은 강원도 태백시 하사미리의 외나무골이라는 산골짜기를 찾았다. 그리고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 이전, 1957년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헐벗은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언제나 ‘땅 끝으로’ 갔다. 당시 미국인에게 땅 끝과 같았던 한국, 한국인에게조차 땅 끝이었던 강원도 산골 예수원은 그들의 고향이 되었다. 

아처 루벤 토레이와 제인 그레이 토레이의 이야기다. 한국명 대천덕과 현재인이다. 16일 서울 정동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고 현 사모 장례예배에서 복음성가 가수인 이무하씨가 현 사모의 평생 신앙고백이 담긴 노래 ‘땅 끝에서’를 불렀다.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내 사모하는 내 주님께/땅 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안고/땅 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안고/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젊은 아처와 제인은 화려함이 담보된 장래의 모든 삶을 뒤로하고 땅 끝인 한국으로 떠났다. 모든 사람이 기를 쓰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 시절에 땅 끝인 강원도 산골짜기로 갔다. 그들은 평생 제국의 논리가 만연한 이 땅에서 우상을 타파하는 ‘아이돌 브레이커(Idol Breaker)’로서 천국의 삶을 실증하며 살았다. 

젊은 날, 그들이 한국으로 떠나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아처, 제인, 어리석은 결정이야. 삶은 그다지 길지 않다네. 대책 없는 낭만성은 버리라고….” 강원도 태백으로 떠날 때, 한국인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까? “아니, 당신들이 왜?” 

‘땅 끝으로’ 떠난 그들은 외롭지 않았다. 장례식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처와 제인의 고향 친구들은 수백 명의 ‘땅 끝’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눈시울 적시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고 있을까. 

젊은 아처와 제인은 ‘땅 끝에서’ 모든 삶 드리며 주께 드릴 열매 가득 맺었다. ‘땅 끝으로’ 떠난 그들의 결정은 옳았다! 예수원과 예수원 정신이야말로 그 실재적 증거다. 이 땅의 젊은 그대들이여, 땅 끝으로 떠나라!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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